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메로베우스 왕조 (문단 편집) ==== 멸망 ==== 킬페리크 2세 사후 왕위에 오른 이는 다고베르 3세의 아들로 수도원에 들어가 성직 활동을 하고 있던 '''[[테우데리크 4세]]'''였다. [[카롤루스 마르텔]]은 그를 명목상 왕으로 섬기면서도 전권을 자신의 손아귀에 쥐었다. 마르텔은 내치를 안정적으로 이끌었고 732년 [[투르-푸아티에 전투]]에서 [[우마이야 왕조]]군을 격파해 [[기독교]]의 수호자로서 만인의 칭송을 받았다. 그러던 737년 테우데리크 4세가 사망했다. 카롤루스 마르텔은 왕을 세우기를 거부하고 왕좌를 비어뒀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기록이 미비해 분명하지 않으나, 왕으로 오르기 위해 사전 작업을 하려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마르텔은 왕이 없는 왕국의 궁재로서 전권을 행사하다가 741년 사망했고, 두 아들 카를로만과 [[피핀 3세]]가 궁재를 세습했다. 두 사람 역시 몇년 간 왕을 옹립하지 않다가 이복 동생 그리포와 처남인 바이에른 공작 오딜로의 반란에 직면하자, 그들의 통치에 합법성을 더하기 위해 743년 선왕의 아들인 '''[[킬데리크 3세]]'''를 왕으로 옹립하기로 했다. 그 후 카롤로만과 피핀 3세는 최고 권력을 놓고 대립했다. 그러다가 경쟁에서 밀린 카롤로만이 747년 수도원에 들어가면서 피핀 3세가 유일한 궁재가 되었다. 751년, 피핀 3세는 모두가 자신을 추종하는데 왕이 되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프랑크 대표단을 교황 [[자카리아]]에게 보내 다음과 같이 문의했다. >"실력은 있는데 왕이 되지 못한 자가 왕이 되어야 합니까? 아니면 왕이면서도 실력이 없는 자가 통치를 해야 합니까?" [[파일:킬데리크 3세의 폐위.jpg]] 자카리아는 피핀의 속내를 눈치채고 그를 왕으로 인정했다. 이에 피핀 3세는 751년 11월 킬데리크 3세의 머리를 삭발하고 생오메르에 있는 생베르탱 수도원으로 보냈다. 그 후 그곳에 갇혀 지내던 킬데리크 3세는 754년경에 사망했다. 이리하여 메로베우스 왕조는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했고 [[카롤루스 왕조]]가 등극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